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어온 산업의 계보는 분명하다. 철강과 조선, 자동차를 거쳐 반도체와 배터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주력산업이 앞으로도 한국 경제의 성장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생산연령인구는 감소하고 투자는 위축되고 있으며, 주요국은 첨단기술과 공급망을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10~20년 뒤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7대 SEED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첨단 공급망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국가 프로젝트다.
SEED는 ‘파괴적 혁신을 위해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미래 성장엔진’을 뜻한다. 정부는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라는 기존 ‘3대 MEGA 프로젝트’에 7대 SEED를 더해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7대 SEED를 일곱 개의 유망 기술 목록으로만 읽어서는 정책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 의미는 AI와 에너지, 첨단기술, 제조업, 공급망을 하나의 국가 산업 포트폴리오로 연결하려는 데 있다.

AI 혁명은 결국 에너지 혁명이다
AI 경쟁은 흔히 반도체 성능과 데이터 확보 경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AI 모델의 연산량이 증가하고 데이터센터가 확대될수록 경쟁의 중심은 전력으로 이동한다. 아무리 우수한 AI 반도체를 생산하더라도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면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을 국내에 유지하기 어렵다.
정부가 7대 SEED 가운데 SMR·핵융합·재생에너지를 앞에 배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수형 i-SMR은 203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며, 비경수형 SMR은 2030년대 건설에 착수한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작은 규모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어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선박, 국방시설 등에 분산형 전력과 열을 공급할 수 있다. 정부는 디지털트윈을 활용해 실증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2030년까지 다양한 설계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술중립·성능기반 규제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핵융합은 더 장기적인 승부다. 정부는 AI 가상 핵융합로를 활용해 설계와 플라즈마 제어를 최적화하고, 2035년까지 한국형 혁신 핵융합로를 건설해 2030년대 말 전력 생산을 실증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40년대에는 300~500MWe급 상용로를 여러 기 건설하는 계획도 병렬로 추진한다.
재생에너지 역시 발전원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효율 35% 이상의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 20MW+급 초대형 해상풍력터빈, 50~100MW급 수전해 실증, GW급 초고압 직류송전망, 초전도 송전망, AI 기반 전력망 운영모델을 하나로 묶었다.
이 구조를 보면 에너지 SEED의 목적은 탄소중립만이 아니다. AI와 첨단 제조업을 국내에 붙잡아두기 위한 ‘산업용 전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앞으로 국가의 AI 경쟁력은 다음과 같은 결합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AI 경쟁력 = 반도체 × 전력 공급 × 전력망 × 냉각 × 공급망
AI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발전사업자, 전력기기 기업, 원전·풍력·수소 기업, 데이터센터 운영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로 움직여야 한다.

양자·우주·바이오는 AI 다음의 산업영토다
에너지 SEED가 AI 시대의 기반이라면 양자·우주·첨단바이오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프론티어 기술이다.
정부는 2029년까지 오류정정이 가능한 100큐비트급 양자프로세서(QPU)를 확보하고, 양자칩부터 제어장치와 운영 소프트웨어까지 갖춘 풀스택 양자컴퓨터를 국내 기업 주도로 개발할 계획이다. 반도체 대기업을 중심으로 민·관 공동출자 SPC를 설립해 ‘K-퀀텀 파운드리’를 구축하고, 2035년 양자칩 제조역량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도 내놓았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양자컴퓨터 한 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양자칩을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제조기반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강점은 모든 원천기술을 가장 먼저 발명하는 데만 있지 않다. 실험실에서 탄생한 기술을 신뢰성 높은 부품으로 만들고, 이를 양산 가능한 공정과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축적한 제조역량을 양자산업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우주·항공 분야도 달 착륙 자체보다 그 이후의 산업생태계가 중요하다. 정부는 2029년 달 궤도 통신위성, 2030년 민간 주도의 700kg급 달 착륙선, 2032년 1,800kg급 달 착륙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동시에 2035년까지 독자적인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구축하고, AI 연산 노드를 탑재한 우주데이터센터와 능동제어위성을 실증한다.
이는 우주를 탐사의 대상에서 통신·데이터·연산·모빌리티가 결합된 경제영토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차세대 민항기 국제공동개발에 국내 기업을 참여시키려는 계획도 완제기 개발보다 초격차 소재와 핵심부품 공급망에 진입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첨단바이오는 신약산업의 경계를 넘어선다. 정부는 암 특화 AI 모델, AI와 로봇이 운영하는 자율실험실, 생명체를 설계·생산하는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고, 2035년까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제품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AI가 생명체의 설계도를 만들고 로봇이 이를 제작·검증하는 바이오파운드리는 의약품뿐 아니라 바이오플라스틱과 지속가능항공유까지 생산할 수 있다. 바이오가 제약산업의 한 분야를 넘어 화학·소재·에너지산업의 생산방식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공급망은 일곱 번째 SEED가 아니라 모든 SEED의 뿌리다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산업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자칩과 위성, SMR과 풍력터빈, BCI와 AI 데이터센터를 생산하려면 핵심광물과 소재·부품·장비가 필요하다.
첨부 추진방안은 전기차 모터와 휴머노이드, AI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되는 영구자석용 중희토류의 특정국 의존도가 99%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특정 국가가 수출을 제한하면 완성품을 생산할 기술이 있어도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공급망 품목을 세 종류로 나눈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첫째, 국가생존 필수품목은 정·제련과 재자원화를 통해 국내 생산기반을 확보한다.
둘째, 국내 생산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품목은 비축과 수입선 다변화로 대응한다.
셋째,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품목은 R&D와 실증·상용화를 집중 지원한다.
정부는 10대 핵심광물 재자원화율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고, 비축품목을 24종에서 29종으로, 비축물량을 최대 180일에서 365일로 확대할 계획이다. 소부장 기술개발에는 5년간 10조원을 투입하고, 앵커기업과 협력기업이 공동으로 기술개발·실증·해외 진출에 나서는 ‘15대 함께성장 프로젝트’에도 5년간 5조원을 투입한다.
공급망 정책의 성과를 단순한 국산화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특정국 의존도, 조달선 다변화, 비축일수, 대체소재 개발, 재자원화율, 국내 생산원가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모든 광물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산업이 멈추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연구비를 산업으로 바꾸는 국가의 방식
이번 정책에서 기술 목록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업화 방식의 변화다. SPC, 투자형 R&D, 블록펀딩, 출연연의 임무 중심 개편, 실증 인프라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과거 국가 R&D의 고질적인 한계는 논문과 특허가 생산과 시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기술개발이 끝난 뒤에도 실증 부지와 인허가, 초기 구매자와 후속투자가 없어 ‘사업화의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SMR·핵융합·양자·유전자·세포치료제 등에 민·관 공동출자 SPC를 도입한다. 또한 R&D 자금을 단순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기업 지분을 취득하고, 투자금을 회수해 다시 첨단기술에 투입하는 ‘투자형 R&D’도 추진한다.
대학에는 연구자 개인별 과제지원을 넘어 대학 단위 블록펀딩을 도입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에 맞춰 국가임무를 장기간 수행하는 조직으로 전환한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제도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SPC는 민간의 기술과 경영 판단이 작동하는 독립적인 구조를 가져야 한다. 정부 주도의 사업체가 하나 더 만들어지는 데 그쳐서는 안 될것이다. 출자 비율과 의사결정권, 실패 시 손실분담, 기술가치 평가, 투자 회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것이다.
블록펀딩 역시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하되, 목표와 평가가 사라지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될것이다. 장기 연구의 자율성과 국가임무에 대한 책임성을 함께 설계해야 할것이다.
7대 SEED의 성공을 가를 다섯 가지 조건
첫째는 선택과 집중이다. 일곱 분야를 동시에 추진하더라도 모든 세부기술을 동일한 강도로 지원할 수는 없다. 한국이 세계 공급망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구체적으로 좁혀야 할것이다. SMR의 핵심 부품, 양자칩 제조, 핵융합 장비, 위성통신 부품, 바이오 제조처럼 기존 산업역량을 이전할 수 있는 영역이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
둘째는 단계별 검증이다. 2035년이라는 최종 목표만 제시해서는 정책 실패를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기술성숙도, 실증 성공률, 인허가 기간, 민간 후속투자, 생산원가, 수출계약 등 2~3년 단위의 중간 목표를 공개해야 할것이다.
셋째는 실증과 최초 구매자다. 기술개발에 성공해도 첫 번째로 구매해줄 시장이 없으면 기업은 생산시설에 투자할 수 없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규제자 역할을 넘어 초기 수요자와 실증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할것이다. 공공구매 이후 민간계약과 수출로 이어지는 경로도 함께 설계해야 할것이다.
넷째는 정책의 지속성이다. 핵융합·양자·우주·바이오는 한 정부의 임기 안에 완성할 수 없는 기술이다. 정권이나 담당 부처가 바뀌어도 연구와 인력이 유지될 수 있는 장기 재정 및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
다섯째는 실패를 관리하는 능력이다. 첨단기술 투자는 본질적으로 실패 가능성이 높다. 실패 자체를 문제 삼으면 연구자는 안전한 과제만 선택한다. 반대로 실패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용인하면 예산 낭비가 반복된다. 기술적 실패와 관리 실패를 구분하고, 가능성이 낮아진 사업은 과감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할것이다.
기술은 씨앗이지만 산업은 생태계다
7대 SEED는 대한민국의 성장 공식을 바꾸려는 시도다.
과거에는 해외에서 원료를 들여와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했다. AI 시대에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생산성을 높이고, 미래에는 에너지·양자·우주·바이오와 첨단 공급망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야 할것이다.
정부는 반도체 등 3대 MEGA 프로젝트에서 창출된 자본이 다시 첨단기술에 투자되고, 성장한 SEED가 새로운 MEGA 프로젝트로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제시했다. 이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7대 SEED는 단순한 정부 연구사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다음 산업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씨앗을 심는 것과 산업을 수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연구비를 투입했다고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기술을 확보했다고 기업이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7대 SEED를 평가할 때는 “정부가 얼마를 투자했는가”보다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할것이다.
누가 기술개발을 끝까지 책임지는가
어디에서 실증하고 누가 최초로 구매하는가
어느 기업이 생산하고 세계시장에서 매출을 만드는가
그리고 그 성과가 다시 새로운 기술에 투자되는가
기술은 씨앗일 뿐이다. 씨앗을 산업으로 키우는 것은 연구·자본·규제·제조·시장·공급망을 연결하는 국가의 운영 능력이다. ‘대체불가 대한민국’은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가 한국의 기술과 부품, 시스템 없이는 미래산업을 완성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어온 산업의 계보는 분명하다. 철강과 조선, 자동차를 거쳐 반도체와 배터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주력산업이 앞으로도 한국 경제의 성장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생산연령인구는 감소하고 투자는 위축되고 있으며, 주요국은 첨단기술과 공급망을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10~20년 뒤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7대 SEED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첨단 공급망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국가 프로젝트다.
SEED는 ‘파괴적 혁신을 위해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미래 성장엔진’을 뜻한다. 정부는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라는 기존 ‘3대 MEGA 프로젝트’에 7대 SEED를 더해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7대 SEED를 일곱 개의 유망 기술 목록으로만 읽어서는 정책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 의미는 AI와 에너지, 첨단기술, 제조업, 공급망을 하나의 국가 산업 포트폴리오로 연결하려는 데 있다.
AI 혁명은 결국 에너지 혁명이다
AI 경쟁은 흔히 반도체 성능과 데이터 확보 경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AI 모델의 연산량이 증가하고 데이터센터가 확대될수록 경쟁의 중심은 전력으로 이동한다. 아무리 우수한 AI 반도체를 생산하더라도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면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을 국내에 유지하기 어렵다.
정부가 7대 SEED 가운데 SMR·핵융합·재생에너지를 앞에 배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수형 i-SMR은 203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며, 비경수형 SMR은 2030년대 건설에 착수한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작은 규모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어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선박, 국방시설 등에 분산형 전력과 열을 공급할 수 있다. 정부는 디지털트윈을 활용해 실증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2030년까지 다양한 설계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술중립·성능기반 규제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핵융합은 더 장기적인 승부다. 정부는 AI 가상 핵융합로를 활용해 설계와 플라즈마 제어를 최적화하고, 2035년까지 한국형 혁신 핵융합로를 건설해 2030년대 말 전력 생산을 실증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40년대에는 300~500MWe급 상용로를 여러 기 건설하는 계획도 병렬로 추진한다.
재생에너지 역시 발전원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효율 35% 이상의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 20MW+급 초대형 해상풍력터빈, 50~100MW급 수전해 실증, GW급 초고압 직류송전망, 초전도 송전망, AI 기반 전력망 운영모델을 하나로 묶었다.
이 구조를 보면 에너지 SEED의 목적은 탄소중립만이 아니다. AI와 첨단 제조업을 국내에 붙잡아두기 위한 ‘산업용 전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앞으로 국가의 AI 경쟁력은 다음과 같은 결합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AI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발전사업자, 전력기기 기업, 원전·풍력·수소 기업, 데이터센터 운영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로 움직여야 한다.
양자·우주·바이오는 AI 다음의 산업영토다
에너지 SEED가 AI 시대의 기반이라면 양자·우주·첨단바이오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프론티어 기술이다.
정부는 2029년까지 오류정정이 가능한 100큐비트급 양자프로세서(QPU)를 확보하고, 양자칩부터 제어장치와 운영 소프트웨어까지 갖춘 풀스택 양자컴퓨터를 국내 기업 주도로 개발할 계획이다. 반도체 대기업을 중심으로 민·관 공동출자 SPC를 설립해 ‘K-퀀텀 파운드리’를 구축하고, 2035년 양자칩 제조역량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도 내놓았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양자컴퓨터 한 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양자칩을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제조기반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강점은 모든 원천기술을 가장 먼저 발명하는 데만 있지 않다. 실험실에서 탄생한 기술을 신뢰성 높은 부품으로 만들고, 이를 양산 가능한 공정과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축적한 제조역량을 양자산업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우주·항공 분야도 달 착륙 자체보다 그 이후의 산업생태계가 중요하다. 정부는 2029년 달 궤도 통신위성, 2030년 민간 주도의 700kg급 달 착륙선, 2032년 1,800kg급 달 착륙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동시에 2035년까지 독자적인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구축하고, AI 연산 노드를 탑재한 우주데이터센터와 능동제어위성을 실증한다.
이는 우주를 탐사의 대상에서 통신·데이터·연산·모빌리티가 결합된 경제영토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차세대 민항기 국제공동개발에 국내 기업을 참여시키려는 계획도 완제기 개발보다 초격차 소재와 핵심부품 공급망에 진입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첨단바이오는 신약산업의 경계를 넘어선다. 정부는 암 특화 AI 모델, AI와 로봇이 운영하는 자율실험실, 생명체를 설계·생산하는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고, 2035년까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제품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AI가 생명체의 설계도를 만들고 로봇이 이를 제작·검증하는 바이오파운드리는 의약품뿐 아니라 바이오플라스틱과 지속가능항공유까지 생산할 수 있다. 바이오가 제약산업의 한 분야를 넘어 화학·소재·에너지산업의 생산방식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공급망은 일곱 번째 SEED가 아니라 모든 SEED의 뿌리다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산업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자칩과 위성, SMR과 풍력터빈, BCI와 AI 데이터센터를 생산하려면 핵심광물과 소재·부품·장비가 필요하다.
첨부 추진방안은 전기차 모터와 휴머노이드, AI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되는 영구자석용 중희토류의 특정국 의존도가 99%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특정 국가가 수출을 제한하면 완성품을 생산할 기술이 있어도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공급망 품목을 세 종류로 나눈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첫째, 국가생존 필수품목은 정·제련과 재자원화를 통해 국내 생산기반을 확보한다.
둘째, 국내 생산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품목은 비축과 수입선 다변화로 대응한다.
셋째,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품목은 R&D와 실증·상용화를 집중 지원한다.
정부는 10대 핵심광물 재자원화율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고, 비축품목을 24종에서 29종으로, 비축물량을 최대 180일에서 365일로 확대할 계획이다. 소부장 기술개발에는 5년간 10조원을 투입하고, 앵커기업과 협력기업이 공동으로 기술개발·실증·해외 진출에 나서는 ‘15대 함께성장 프로젝트’에도 5년간 5조원을 투입한다.
공급망 정책의 성과를 단순한 국산화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특정국 의존도, 조달선 다변화, 비축일수, 대체소재 개발, 재자원화율, 국내 생산원가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모든 광물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산업이 멈추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연구비를 산업으로 바꾸는 국가의 방식
이번 정책에서 기술 목록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업화 방식의 변화다. SPC, 투자형 R&D, 블록펀딩, 출연연의 임무 중심 개편, 실증 인프라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과거 국가 R&D의 고질적인 한계는 논문과 특허가 생산과 시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기술개발이 끝난 뒤에도 실증 부지와 인허가, 초기 구매자와 후속투자가 없어 ‘사업화의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SMR·핵융합·양자·유전자·세포치료제 등에 민·관 공동출자 SPC를 도입한다. 또한 R&D 자금을 단순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기업 지분을 취득하고, 투자금을 회수해 다시 첨단기술에 투입하는 ‘투자형 R&D’도 추진한다.
대학에는 연구자 개인별 과제지원을 넘어 대학 단위 블록펀딩을 도입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에 맞춰 국가임무를 장기간 수행하는 조직으로 전환한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제도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SPC는 민간의 기술과 경영 판단이 작동하는 독립적인 구조를 가져야 한다. 정부 주도의 사업체가 하나 더 만들어지는 데 그쳐서는 안 될것이다. 출자 비율과 의사결정권, 실패 시 손실분담, 기술가치 평가, 투자 회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것이다.
블록펀딩 역시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하되, 목표와 평가가 사라지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될것이다. 장기 연구의 자율성과 국가임무에 대한 책임성을 함께 설계해야 할것이다.
7대 SEED의 성공을 가를 다섯 가지 조건
첫째는 선택과 집중이다. 일곱 분야를 동시에 추진하더라도 모든 세부기술을 동일한 강도로 지원할 수는 없다. 한국이 세계 공급망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구체적으로 좁혀야 할것이다. SMR의 핵심 부품, 양자칩 제조, 핵융합 장비, 위성통신 부품, 바이오 제조처럼 기존 산업역량을 이전할 수 있는 영역이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
둘째는 단계별 검증이다. 2035년이라는 최종 목표만 제시해서는 정책 실패를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기술성숙도, 실증 성공률, 인허가 기간, 민간 후속투자, 생산원가, 수출계약 등 2~3년 단위의 중간 목표를 공개해야 할것이다.
셋째는 실증과 최초 구매자다. 기술개발에 성공해도 첫 번째로 구매해줄 시장이 없으면 기업은 생산시설에 투자할 수 없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규제자 역할을 넘어 초기 수요자와 실증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할것이다. 공공구매 이후 민간계약과 수출로 이어지는 경로도 함께 설계해야 할것이다.
넷째는 정책의 지속성이다. 핵융합·양자·우주·바이오는 한 정부의 임기 안에 완성할 수 없는 기술이다. 정권이나 담당 부처가 바뀌어도 연구와 인력이 유지될 수 있는 장기 재정 및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
다섯째는 실패를 관리하는 능력이다. 첨단기술 투자는 본질적으로 실패 가능성이 높다. 실패 자체를 문제 삼으면 연구자는 안전한 과제만 선택한다. 반대로 실패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용인하면 예산 낭비가 반복된다. 기술적 실패와 관리 실패를 구분하고, 가능성이 낮아진 사업은 과감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할것이다.
기술은 씨앗이지만 산업은 생태계다
7대 SEED는 대한민국의 성장 공식을 바꾸려는 시도다.
과거에는 해외에서 원료를 들여와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했다. AI 시대에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생산성을 높이고, 미래에는 에너지·양자·우주·바이오와 첨단 공급망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야 할것이다.
정부는 반도체 등 3대 MEGA 프로젝트에서 창출된 자본이 다시 첨단기술에 투자되고, 성장한 SEED가 새로운 MEGA 프로젝트로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제시했다. 이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7대 SEED는 단순한 정부 연구사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다음 산업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씨앗을 심는 것과 산업을 수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연구비를 투입했다고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기술을 확보했다고 기업이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7대 SEED를 평가할 때는 “정부가 얼마를 투자했는가”보다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할것이다.
기술은 씨앗일 뿐이다. 씨앗을 산업으로 키우는 것은 연구·자본·규제·제조·시장·공급망을 연결하는 국가의 운영 능력이다. ‘대체불가 대한민국’은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가 한국의 기술과 부품, 시스템 없이는 미래산업을 완성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